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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겠습니다’ 이후…집 크기 줄이고 가능성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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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사람]미니멀 하우스
전자제품은 네 개인 텅 빈 10평 원룸, 이나가키 에미코의 최소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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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키 에미코 작가가 2023년 6월30일 일본 도쿄의 자택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한 뒤 침대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벚꽃길로 유명한 메구로강이 흐르는 일본 도쿄의 나카메구로. 강변을 따라 분위기 있는 카페나 아기자기한 숍이 들어서 여행객이 많이 찾는 동네다. 2023년 6월30일 나카메구로 지하철역에 내려 구글맵이 가리키는 목적지를 향했다. 관광객들과는 점점 멀어지며 한적하고 단정한 주택가로 들어섰다. 야트막한 언덕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가니 5층짜리 오래된 맨션에 다다랐다.

2017년 책 <퇴사하겠습니다>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이나가키 에미코. 그는 51살이 된 2016년, 28년간 기자로 일한 <아사히신문>을 그만두고 낡고 작은 이 집으로 이사했다. 지금까지 최소한의 전기와 가스만 쓰며 단출한 삶을 살고 있다. 자신의 미니멀 라이프를 담은 에세이 책을 여러 권 발간했다. 명성을 얻은 이후 시간이 꽤 흘렀고 그사이 돈도 많이 벌었을 텐데 혹시 생활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궁금한 마음을 품고 초인종을 눌렀다. 익숙한 ‘뽀글뽀글 머리’를 한 이나가키 작가가 얼굴을 내밀었다.
 

냉장고·세탁기 넣을 공간 없어



집 안에 들어서니 정면에 베란다 통창으로 도쿄 주택가가 눈앞에 펼쳐졌다. 시야를 가로막는 건물이 없어 커튼도 달지 않고 햇빛을 온전히 받으며 지낸다고 한다. 탁 트인 전망에 감탄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제야 집 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세월을 머금은 벽지와 가구들이 눈에 띄었다. “50년 된 아파트예요. 7년 전 이사 왔을 때 모습 그대로 벽지도 바꾸지 않고 살아요.” 공간을 차지하는 가구는 침대와 수납장, 장식장 정도가 전부였다. 10평 원룸이라지만 텅 빈 느낌이 강해 훨씬 넓게 느껴졌다.

작은 주방과 화장실을 둘러봐도 냉장고와 세탁기는 없다. “오래된 집이라 그런지 냉장고·세탁기 넣을 공간이 없어요. 그래서 나만 살 수 있는 집이죠.(웃음)” 그는 도시가스를 연결하지 않고 휴대용 버너를 사용해 요리한다. 요리라고 해봐야 밥, 된장국, 절인 채소 등 간단한 음식이다. 주방 찬장에는 쌀겨된장절임(누카즈케)과 조미료 등이 있었고, 바닥에는 매실절임(우메보시)을 만드는 통이 놓여 있었다. 버너엔 밥 지을 때 쓰는 작은 무쇠냄비가 올려져 있었고, 그 옆엔 밥을 보관하는 나무밥통이 있었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다 부엌 소품으로 나무밥통이 있는 것을 보고 마련했는데, 더운 날이 아니면 이틀 정도 밥을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채소는 베란다에서 건조한다. 냉장고가 없으니 식재료 보관은 말리거나 절이는 방법을 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요리를 안 하고, 이미 만들어놓은 걸 꺼내 먹는 게 제 식생활이에요. 만들 때는 30분~1시간이 걸리지만 그걸로 1년 계속 먹는다고 생각하면 간단하죠.”

옷은 침대 옆에 있는 6단 서랍장에 보관된 것이 전부냐고 물으니, 그가 쿨하게 대답한다. “옷 넣을 데가 없어 사고 싶다는 기분도 사라졌습니다.”

기자 시절에는 책이 많았는데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헌책방에 다 넘겼다고 한다. 책방 주인과 마음이 잘 통해 그곳을 자신의 도서관처럼 생각한다. “다시 갖고 싶으면 싸게 살 수 있으니 괜찮아요.”

작지만 넓고, 물건이 없지만 알찬 집을 둘러보고 바닥에 앉아 그의 미니멀 라이프와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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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키 작가가 <아사히신문> 퇴사 뒤 7년째 사는 도쿄의 10평 원룸. 이곳에서 냉장고, 세탁기 등 전기를 많이 잡아먹는 가전제품 없이 살고 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왜 이 집을 택했나요.

“그전에 일한 회사는 주거비를 지원해줬어요. 월급도 많고 좋은 집에 살고 있었어요. 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그 집을 떠나야 한다는 뜻이잖아요. 당시엔 어떤 일을 할지도 생각 안 났고 예정도 없었어요. 그런 가운데 (월세가 싼 집을 찾다가) 이 집을 봤어요. 오래된 집이라 벽도 지저분했는데 그래도 도쿄에 사는 사람 가운데 이 집에 살 수 있다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확신했어요. 냉장고와 세탁기 없는 집에 누가 살겠어요. 운명적인 만남이었어요.”

―어떤 일과를 보내십니까.

“새벽 4시30분에 일어납니다. 보다시피 커튼이 없어서 해가 뜨면 일어나요. 따뜻한 물을 마시고 명상을 합니다. 그리고 청소와 빨래를 하는데 10분이면 끝나요. 요가를 하고 아침 7시 전에 집을 나서 피아노를 치러 갑니다. 방음이 안 되는 이 집에선 피아노를 칠 수 없으니까 아는 분의 가게에 가서 영업하기 전에 피아노 연습을 해요. 오전 9시 카페에서 아침을 먹으며 3시간 정도 일합니다. 점심은 집에 와서 먹어요. 낮잠 자고 다른 카페에 가서 3시간 정도 일합니다. 그리고 목욕탕에 가고,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해요. 그다음 라디오를 듣고 하루를 마감합니다.”

―일상이 지겨울 때는 다른 걸 하나요.

“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생각해요. 다른 걸 하면 스트레스 받아요. 가끔 업무 관련 회식을 하면 술도 마시고 자극적인 음식도 먹으니 몸이 아플 때가 있어요. 인생이 얼마 안 남았는데 몸이 아프면 시간이 아까워요. 예전엔 일부러 자극적인 음식을 찾아 먹곤 했는데 요즘은 반대가 됐어요. 자극 없는 생활이 행복해요.”
 

밥상이 그리워 뛰어갈 만큼 맛있는 식사



이나가키 작가는 2018년 책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그만의 간단한 요리법을 소개했다. 비법 하나는 태양을 활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아침에 양파를 썰어 베란다에 두면 건조되는 동안 태양이 반쯤 익혀준다. 저녁에 돌아와 축 처진 양파에 된장과 뜨거운 물만 부으면 절묘하게 익은 된장국이 된다. 말린 채소는 맛이 진해지고 감칠맛도 강해져 굳이 가다랑어포를 넣어 육수를 내지 않아도 된다. 요리시간 10분. 한 끼에 식재료비 200엔(약 2천원).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이 필요하지 않다. ‘먹는 재미 없이 무슨 낙으로 사냐’는 의문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입으로 칭찬하기는 뭣하지만, 정말로 맛이 있다!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밥상이 그리워 집으로 뛰어갈 만큼. 진짜다. 농담이 아니다. 돈과 노력을 쏟지 않아도 ‘먹고 산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최고로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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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주방. 밥 지을 때 쓰는 무쇠냄비와 남은 밥을 보관하는 나무밥통, 각종 절인 음식을 담은 유리병 등이 있다. 오른쪽 화장실 벽에는 각종 청소도구가 걸려있다. 화장실 안쪽 창고에는 작가가 평소 앞치마, 가방 등을 만들 때 쓰는 뜨개질 도구가 보관돼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가전제품을 거의 안 쓰는데, 쓰는 전기제품은 무엇인가요.

“네 개 있어요. 전등, 라디오, 컴퓨터, 휴대전화.”

―한 달 전기요금은 얼마 나옵니까.

“200엔 이하예요. 일본에서 전기요금이 올라가는데 저는 아무 상관 없어요.(웃음)”

―더위와 추위는 어떻게 견디나요.

“저는 밖에서 일하잖아요. 카페는 적당한 온도니까 괜찮은 것 같고요. 더운 날에는 그냥 ‘덥다…’ 합니다. 더워서 싫다는 생각조차 안 하게 됐어요.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안 쓴 뒤로 바람에 민감하게 됐어요. 바람이 불면 시원하잖아요. 어디서 어떻게 바람이 오는지, 오늘은 바람이 부는 날인지 그런 것에 관심을 많이 쏟게 됐어요. 겨울엔 햇빛이 아래로 내려오잖아요. 햇빛이 집 안으로 들어오니 따뜻해서 밤에도 괜찮아요. 아마 오래된 집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집들은 설비에 의존해서 집의 방향이라든가 조건이 안 좋아요. 여기는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 지은 집이라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 만든 것 같아요.”

―글 쓰는 일이 직업인데 책상도 없는 걸 보니 집에선 일을 안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일과 생활을 분리하는 이유가 있나요.

“집에서 계속 일하면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혼자 있게 되잖아요. 외롭고 재미도 없어서 카페에 가요. 같은 카페에 계속 있으니 거기서 만나는 사람이 많고 친구도 많이 생겼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헌책방이 제 책장이고 카페가 사무실이고 목욕탕이 욕실이에요. 제 방은 작지만 동네 전체가 집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아주 큰 집에 사는 거죠.”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네. 회사 다닐 때는 경쟁이 치열하니 일만 생각하고 주변에 누가 사는지 그런 건 귀찮아서 관심 없었어요. 회사를 그만두니 혼자가 되고 이 동네에서 살아야 하니까 상가에 가서 주인과 이야기하고 그렇게 시작했는데요. 처음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면 좋은지 잘 몰라 먼저 인사부터 시작해서 세상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인간관계가 깊어지고 있어요. 집을 수리하고 유지하듯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계산해봤더니 100명이 넘더라고요.”

―코로나19 기간에는 어떻게 버티셨어요.

“일본에서는 ‘스테이홈’이라고 집에 있으라는 캠페인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집 안에 있었잖아요. 제게는 집이 동네니까 동네에 나가서 계속 스테이홈을 했어요.(웃음)”

소유하는 게 풍요로움이라는 믿음에서 한 걸음만 물러나면, 모든 게 달라 보인다. 코드를 뽑아보면 집 안과 밖이라는 사고방식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소유가 아니라 공유라는 사고방식을 중심축에 놓고 생각하면 가전제품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온 온갖 물건들과 나와의 관계에 변화가 생긴다.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중 


* 출처 :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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